2015년 03월 02일

나무는 살아있다

작성일자 : 2014-12-22

 

나무는 살아있다

4년 여 전, 아내의 권면으로 소목(일명 : 전통 목가구)을 배우게 되었다. 강남에 위치한 전통공예학교에서 토요일의 반나절을 활용하여 전반 1년의 기초반과 1년의 연구반 등 총 2년을 수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국가 무형문화재인 소목장(목가구 장인을 일컬음) 선생님의 실습 지도에 따라 기본적인 목공구 다루는 법부터 나무 다루기, 칠하기, 도안 작성하기 등을 배우며, 대표적인 전통 목가구인 보석함, 서안, 사방탁자 그리고 문갑 등을 6개월에 한 작품씩 제작하게 되어 있었다. 그 후에 더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추천하는 공방에서 회원제 방식으로 동호인 활동을 하며, 2년에 한 번 정도 공동 작품전을 개최하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나 나무 조각하는 것을 즐겨하던 터라 2년의 교육 과정을 재미있게 마치고 더 욕심이 나서 선생님의 용인 공방을 찾게 되었고, 그 옆에 위치한 제자들의 공방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여 간 탈퇴 당하지 않을 정도로 띄엄띄엄 주말을 이용하여 자그마한 접시, 타닥 등 이런저런 전통 목가구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다. 나름대로는 스트레스 푸는 취미 생활로도 좋고, 뭔가 손으로 만들어진 결과를 집에 가져갈 수 있어서도 좋고, 다른 이에게 뭔가 나눠줄 수 있다는 기쁨이 있어, 모범 회원은 아니어도 재미있게 참여해 왔다.

 

그러면서 참으로 어렵고도 신기하게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이 ‘나무’이다. 소목이라는 것이 주로 우리나라 전통 수종 목재를 선택하여 전통 기법에 준하여 만드는 나무 제작 기술인지라, 과목이라 불리는 느티나무부터 참죽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물푸레나무 등을 마름질하여 가구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서 있는 나무(살아 있는 나무)를 곧바로 제재하여 목가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른 후 적어도 1~2년을 통나무 채로 비바람 맞히며 두었다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몇 센티 두께의 얇은 판재로 제재한 후, 적어도 4년 이상 바람직하게는 7년 이상을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서 한 켜씩 사이에 삿대를 끼워 쌓아 말린 후 사용하게 된다.

 

이 나무들은 사계절을 4번 이상 지내며 습한 여름과 건조한 겨울을 견디고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를 겪으면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여, 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 후, 벌레 먹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만 사용할 수 있다. 긴 시간 동안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무의 변화가 심하여 실제 사용 가능한 나무는 처음 제재한 나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크기로 켜고 대피질을 하고 나면 실제 사용하는 부분은 30%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가구 제작에 쓰일 나무를 준비하기 위해 소목장이라 불리는 ‘목수’들은 매년 다양한 종류의 통나무를 사서 말리며, 사용 가능한 햇수를 기다리게 된다. 가구용으로 좋은 목재는 보통 수령이 적어도 백년이 넘는 국산 느티나무인데, 좋은 나무는 나이테가 매우 촘촘하고 구불구불하여 그 무늬의 변화가 때로는 강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산 같기도 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목수에게 좋은 나무에 대한 욕심(?)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이기에, 여기저기 제재소에 도착한 나무들을 기회 닿을 때마다 실피며, 제재하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다. 때때로 어떤 마을에서 수 백년 된 고사목(枯死木)이 나왔다고 하면, 대부분 무늬나 나이테가 좋은 모양인 드문 기회인지라 너도 나도 큰 돈을 주고 사려 한다. 그런데 켜 봤더니 속 부분이 썩어 비어있어 사용할 부분이 적은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러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경륜 있는 소목장이라도 통나무 속이 비어있는지 채워져 있는지는 알 수 없기에 많은 장인들이 한 두번은 이런 경우를 겪는다고 한다.

 

이런 나무를 가지고 작성한 설계도 대로 마름질하고 수십 차례 다듬으며 목가구를 만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무들은 또 다양한 변형을 일으킨다. 그래서 매번 다듬으며 중간중간 보관할 때 최종 조립 시까지는 비닐랩으로 싸서 바깥 습도나 온도를 차단한다. 통풍 잘되는 공방에서 작업하다 건조한 아파트로 옮겨다 놓아, 갈라지고 휘는 경우를 지난 2년 간의 짧은 기간에도 수 차례 만났었다. 최근에는 작업중인 천판(목가구의 덮개 부분인 통판)을 비닐랩으로 싸서 공방에 두 주간 보관해 두었는데, 근처에 난로가 있어서 열의 영향으로 그쪽 방향으로만 여러 개의 실금이 생기며 갈라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렇게 다듬질하여 접착제를 사용하여 조립한 후에는 표면을 부드럽게 다듬는 사포질과 다양한 전통 칠을 수 차례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표면의 무늬가 잘 드러나도록 투명한 빛깔로 광택을 내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향후 수십 년 이상 사용하며 나무에게 외부 온도나 습도를 차단하는 효과도 노리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 목가구는 일반적으로 통판으로 만들어져 있고, 못을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 방식을 사용하며, 자연 친화적 접착제를 사용하여 붙이고, 합성수지가 아닌 천연 칠을 하여 만들어 진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에도 통풍이 잘 되는 한옥 같은 전통 가옥에 적합하다. 외부와 자연적인 통풍이 원활하지 않은 주택에서는 아무리 앞선 과정을 거치며 잘 만들어진 가구라도 틀어지고 금이 가는 경우를 왕왕 본다.

 

전통 목가구를 만드는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취미 생활로 보낸 동호인에 불과하지만, 내가 필요한 나무를 구하고, 켜고 다듬고, 조립하여 붙이고, 사포질하고 칠하는 4년 여 시간 동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나무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에게 나무라는 것은 땅에 뿌리 내리고 자라나서, 우리에게 푸르름과 열매, 그늘, 자양분을 주고, 죽어서 목재로 마무리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무가 작은 목가구로 탈바꿈 되는 과정을 보면서 나무가 숨을 쉬고 있음을 느꼈고, 우리 삶의 공간에 공존하며 손때가 묻고 우리에게 필요한 가구로 존재하는 동안에도 나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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