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14일

새로이 시작하기가 왜 힘들까

작성일 : 2009년 12월

새로이 시작하기가 왜 힘들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린 지난해에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쉬운 것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무엇인가 조금씩은 개선되는 삶의 질과 삶의 모양에 대해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우리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경우, 새롭게 시작함에 있어 진보하기 보다는 점차 퇴보하는 비율이 더 높고, 그나마도 급격하게 퇴보한다. 약간의 이룸을 보일라치면 더 빠르게 퇴보하는 많은 경우를 볼 수 있다.

한동안 IT 업체들의 꿈은 상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었을 때, 한 세대를 마무리하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대규모 외부자금들이 유입되었을 때,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사업을 확장하여 더욱 매진한다던가, ‘사업방향의 다각화’라는 명분하에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한다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벤처 캐피탈들처럼 깨끗하게 팔아 치우고 손 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세칭 ‘펀드’들의 농간에 이끌려 몇몇 대주주들만 재미 보는 우회상장의 마당놀이에 신규 상장업체들이 꼭두각시로 내몰리는 세태가 낮 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곡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어렵사리 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전환하는 유 경험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에서 이전의 그들 자서전에 펼쳐져 있던 드라마틱한 시나리오가 재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들이 다음 준비나 시도에선 이전과 같은 전투력이 유지되고 훨씬 나아진 준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성공이나 마무리와 동일한 결과를 낳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풍족한 자산 마저도 거덜내고 있을까? 왜 이찬진은 한글의 다음을 내놓는데 이렇게도 더디고, 이재웅의 다음은 다음을 고민하고 있을까?

그런 어려움을 겪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이전의 성공경험에 아직 얽매여 있음이 아닐까?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거친 후, 가장 극대화된 자신의 능력이 사업 분야의 시기적절함과 맞대어져서 맺힌 결실은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경험과 가치에 찬사를 보내고 결실을 일구어낸 사람은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그 과거가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기는 하나 모두일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토대에 너무 의존적인 미련으로 인해 새로운 시작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말씀을 떠 올리게 한다.

그렇다. 새로운 사업을 전혀 다른 시작이다. 이와는 다른 예이긴 하지만, 이전의 자기 분야에서 명성을 얻던 인물들이 새로운 도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유수한 대기업, 글로벌 기업에서 능력은 인정받으며 높은 위치까지 올랐던 임원들이나, 공공기관에서 능력을 발휘하던 간부들,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교수들이 중소기업이나 IT 벤처기업에서 다른 시작을 할 때, 그 도전적인 자세가 귀감이 되고 가치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눈물겨운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이제까지의 좋은 환경에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 기술들이 새로운 사업에서 귀중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중소기업 환경이나, 벤처의 사업환경은 분야가 같더라도 전혀 새로운 시작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하기에, 세칭 ‘물이 다르다’라는 사실을 빨리 인식하고, 구두끈을 다시 동여매야 한다. 화가들은 그림을 새로이 그릴 때마다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이처럼 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자세이어야 한다. 이전의 결실이나 실패의 경험이 소중함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간직하고 기억하고, 준비를 위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이 경험이 다음을 준비하는데 얽매이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지, 새기고 또 새길 때, 과거의 찬란했던 기억에만 사로잡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중년세대의 오류는 범하지 않으리라. 마흔 셋에 사업에 뛰어든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 이 두 시간의 연결이 연속된 아날로그로 보이지만, 마음가짐은 각각이 독립된 디지털로 인식하면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List
No 제목 Date
72 국산 시스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개방형이 기회다 2015-03-2
71 CES 2015, 새로운 패러다임 그리고 우리 중기 ICT 2015-03-2
70 나무는 살아있다 2015-03-2
69 잠에서 깨어난 공룡, 중국을 어떻게 접근할까 2015-03-2
68 ICT 기술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는 R&D 지원 방안은 있는가? 2015-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