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14일

쓸쓸한 실리콘밸리에서 희망을 보며

작성일 : 2009년 1월

쓸쓸한 실리콘밸리에서 희망을 보며

금융대란으로 시작한 미국경제의 위기는 오랜만에 방문한 실리콘밸리에서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직원들을 줄이고, 조정하며 비우고자 하는 사무실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지라, 점심때면 20~30분을 기다리며 먹어야 한다며 중국인 엔지니어들에게까지 유명한 순두부집도 분위기가 썰렁하고,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잔 기울이는 고기집도 손님이 뜸하다. 매년 신년의 IT기술동향을 보여주는 CES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라스베가스 호텔은 반값에도 빈 방이 많다.

이렇듯 외형적으로 보이는 미국 IT산업 메카의 분위기는 가희 위기의 미국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회사의 한 핵심 엔지니어가 자신을 해임한 것에 앙심을 품고, 밖에 나갔다가 면담 요청하며 들어와 CEO를 비롯한 경영진 여럿을 총기로 사살한 사건은 실리콘밸리의 벤처 회사들의 분위기를 더욱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의 1월 기온이 20도까지도 올라가는 것을 보며, 여느 때 같은 좋은 분위기라면 일광욕하러 간다고 분위기 잡는 사람들도 많으련만, 되도록 집에서 식사하려는 주말분위기에 식당가도 한산하고, 쇼핑몰은 상가 주인과 점원들로만 들썩인다. 그래서인지 이전에는 들어와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거들떠보지 않던 점원들이 연실, ‘Can I help you?’를 외쳐대니, 대꾸하기가 귀찮기까지 하다. 아무튼 한국에서 듣던 대로 뭔가 다르긴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기온의 실리콘밸리에서 희망적인 기운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진 이겨지는 기간을 감내함이 있다. 현재의 위기상황이 어떻게 해서 왔나, 이전에 제대로 못 보던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고 분석하며,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노련한 경영그룹들의 바쁜 시도들이 있다. 이들은 그간의 너무나도 부풀어진 회사의 비용과 가치평가, 그리고 방만한 투자를 다시금 조정하며, 버블을 최소화하여 보다 탄탄한 회사로 응집력을 갖도록 탈바꿈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여러 해 동안의 호황기를 거치며 그냥 넘어가 버려, ‘합리성과 경제성’이라는 미국의 대표적 가치를 희석시킨 지금의 환경에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다. 더불어 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스케줄에 의해 개발하고, 신기술의 결과물을 보이고자 하는 고급 개발그룹들이 있다. 이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한다.’ 이었다. 구글에서 만난 한국인 엔지니어의 말, ‘아무리 상황이 혹독한 겨울이 온다고 해도, 우린 할 일을 해야죠.’ 이 말에 실리콘밸리의 저력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을 보는 지도자가 있다. 이제 막 취임을 했음에도, 지지율이 80%를 넘어서는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이곳 ‘실리콘밸리’라는 회사의 CEO인 듯 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IT기기를 잘 활용하고, 아주 푹 빠져 있어, 생활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인정되는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IT분야에 대한 가치를 실현하는 정책을 준비해 왔다니, 이런 지도자를 둔 ‘주식회사 실리콘밸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 게다가 경험과 능력은 출중하나, 이번에 시행착오를 겪은 IT 경영자 및 핵심 엔지니어 등의 IT 리더들이 벌써 다음을 준비하는 테스크포스를 구성하여 가동하고 있다는 말에 리더십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상황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보고 있다. 이 위기의 시기가 기회의 폭을 더 넓히고, 좋은 찬스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좋은 시절에는 틈이 보이지 않아 기회를 만들기 어렵지만, 위기의 시기엔 커다란 틈이 벌어져 이 틈을 볼 수 있고,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실리콘밸리는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빠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중반에 아니면 더 늦게라도 ‘반드시 다가올 도약의 기회’를 잡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CES쇼에선 올해의 화두로 도드라지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고, LED에 대한 시도들도 돋보였다. 지난 해 하반기에 붉어진 경제 위기현상들 때문에 급작스레 투자 규모를 조정하느라 연초의 CES를 초점 맞추지 못했지만, 3월의 CeBit이나, 6월의 Computex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는 회사들을 볼 수 있었다.

매일 가산 디지털단지에서 들려오는 문 닫는 회사들 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이 겨울을 감내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희망의 새싹이 움트고 있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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