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14일

‘도전과 응전의 시대’에 사는 우리 중소 IT

작성일 : 2013년 7월 23일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박사가 자주 인용하는 ‘청어 이야기’를 알고 있다. 북해나 베링해협 등에서 잡아오는 청어는 영국인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기 있는 생선이었다. 먼 곳에서 잡아오는 지라,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냉동으로 들여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살아있는 청어로 들여온다면 그 가격은 2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어부들은 궁리 끝에, 곰치라 불리기도 하는 사나운 물메기 몇 마리를 살아있는 청어들과 함께 수조에 풀어 넣어 먼 바다에서 육지의 수산시장까지 장시간 실어왔다. 그래서 청어들은 오는 동안 물메기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 다니느라 싱싱하게 살아있는 상태로 수산시장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청어들처럼 우리 중소 IT의 사업 환경은 작은 수족관에 갇혀, 피할 곳 없이 언제라도 물메기 점심거리가 될 수 있는 가혹한 현실에 놓여 있다. 블루오션이 될 거라 생각하여, 몽땅 투여해 기술개발 하지만, 이것저것 한계를 넘나들고 피하며 시간 보내다 보면, 때를 놓치고 차별성 없는 제품이 되어 물메기만 가득한 레드오션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다가도 그 틈새 시장이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풍부한 자본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갖춘 대기업이나 스핀 업이라는 그들의 방계 회사가 치고 들어온다. 게다가 이 틈새 시장에서는 소비자 기호 변화, 시장상황 변화에 따라 항상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하고, 여기저기 암 덩어리처럼 도사리고 있는 갑을관계 논리가 판을 뒤흔들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중소 IT가 처해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척박하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 더불어,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주변 환경의 변화는 살아남기 힘들게 하는 심각한 도전이 된다. 얼마 전 우리와는 무관하리라 생각했던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유럽의 가계 부채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게 됐다. 이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주택,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IT 소비시장까지 침체기로 이끄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우리 IT 중기 제품 수출 규모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국내시장에서 우리 IT 중기 제품의 소비 또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강 저편 작은 파동이 흘러 흘러와 우리 동네가 엄청난 홍수로 범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정권 교체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 기조의 변화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행정부는 그 성격상 아무리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가 견고하고, 의지가 강하다 하더라도 제한된 예산 하에서 합리적으로 변화와 발전을 유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하되 장점은 계승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새 정책을 단계별로 추진한다. 그런데 이전 정부 책임자들은 무지인지 과욕인지 정부조직을 대폭적으로 급격하게 바꾸면서 혼란을 초래하였고, 많은 예산을 끌어 모아 4대강 수질개선이라는 사업에만 과도하게 투여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IT 기술 및 경쟁력 수치는 퇴보하였고, 국내 IT 환경은 알아서 재수 좋은 청어만 살아남으라는 작은 수족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세간에는, ‘정부정책의 도움은 바라지도 않는다. 방해나 하지마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렇게 예측 불허한 변화에, 대기업은 강한 체력도 비축해 놓고, 노하우도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때 사세가 확장된 기업도 꽤나 될 것이다. 하지만 체력 약한 중소 IT에겐 이겨낼 수 없는 유행성 독감으로 다가와 많은 기업이 쓰러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척박한 현실과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우리 중소 IT의 현재나 미래에도 계속 도전으로 다가올 것 같다. 토인비가 역사를 분석하며 역사가로서 정확하게 증명하였듯이 말이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한다면 이전보다 더 격렬한 파도로 닥쳐올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우린 이 도전에 과연 응전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앞에 있는 물메기를 나를 잡아먹으려는 포식자가 아니라, 나를 강하게 살아남도록 훈련시킬 트레이너로 바꿀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 중소 IT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응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은 대기업의 길이 있고, 중소 IT는 자신들만의 길이 있다. 여기서 우린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중소 IT는 항상 대기업이 들어오기 힘들어 하고, 규모를 만들 수 없는, 때론 귀찮게 생각하는 분야에서 기술과 아이템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섣부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큰 시장이 되는 아이템은 피해야 한다. 그곳은 중소 IT를 위한 시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확장성을 포기하자는것은 아니다. 한 아이템으로는 그 규모를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아니 한계가 있어야 하고) 연관된 아이템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제품을 추구한다면 어떨까?

또한, 우리 회사의 조직 모양은 치고 빠지도록 신속하도록, 체질을 개선하여야 한다. 중소 IT 제품의 Life-Cycle은 길지 않다. 또한 규모가 될라치면 대응되는 경쟁제품의 등장 또한 신속하다. 따라서 개발조직은 프로젝트 중심의 팀으로 구성하고, 개발 후 안정화되어 사업규모가 나오면 대응되는 사업/지원유지 부서로 넘기고, 다시 조직을 정비하여 다음을 준비하도록 한다. 사업/지원유지 부서도 프리마케팅(Pre-marketing), 시장출시/마케팅, 판매망 구축, 기술지원을 위해, 소수정예 형태로 운영한다. 조직 간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상호 모니터링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소 IT 제품은 그 시장규모가 작다. 기업의 확장 측면이나, 집중 투자하여 열매를 거두려는 바램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지만,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 IT가 실패를 하더라도 받는 타격을 최소화하고, 다음 아이템을 준비하며 역량을 축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특성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항상 현재의 제품과 연관된 다음 제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제품들의 기술이나 제품군은 유사하여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이는 제품 런칭으로 일정기간, 기대한 규모로의 사업 안착이라는 성공도 중소 IT에게 중요하지만, 더 많이 다가올 실패 이후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다음 아이템에서는 더 견고하고, 시장 친화적인 제품으로 진화되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과 거대한 파도로 다가오는 도전을 우리 중소 IT의 능력과 역량으로 이겨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좁고 피할 곳 없는 수족관에서 난폭한 포식자인 물메기로부터 살아남아 자신의 가치를 높인 청어 때들처럼,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업을 세우고 꿈을 키워가며 응전할 때, 우리에게 그 날은 온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킨 청어 때들처럼.

( 이 글을 지난 14년 글루시스에서 헌신한 동료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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