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14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작성일 : 2013-02-27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총리, 장관부터 시작하여 요직의 비서관까지 새 인물들이 임명되고, 누구는 이것이 그의 이력이고, 누구는 무엇이 문제이고 하며, 후보자를 검증하느라 신문 지상의 지면이 부족할 만큼 야단이다. 그런데 이번 인선과정에서도 보면 재산축적이나 자녀 또는 자신의 이력관리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들이 많기 보다는, 조금만이라도 깊이 이력을 파고 들어가 보면, 병역기피,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전관예우, 공금유용, 불법상속 등, 전통적 기득권층이 해오던 행태를 그대로 보이는 사자성어(?)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이제는 좀 변하려나.’ 하는 민초들의 바람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임명권자나 인선그룹의 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이들을 보며, 성경에서 나오는 세례 요한이라 칭하는 인물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 계시로 태어났다는 요한은 당시 지위 높은 제사장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장차 자신의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세상으로 나가서 당시 이스라엘 권력자들의 부패를 맹렬히 질타하였고, 도탄에 빠져 헤매던 백성들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잘못된 삶을 깨달아 바로잡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 예수의 오심을 예비해 오다가,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참수를 당했다. 그래서 성경에선 그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일컫는다.

저마다 자천 또는 타천으로 새로이 시작되는 정부 요직에 오르기 위해 야단법석인 요즈음, 과연 이들 중 요한과 같이 당연한 권리와 혜택을 내려놓고, 미래 자신의 역할을 위해 스스로 고통의 시간, 훈련의 시간을 택한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발적으로 해병대 입대한 스타를 귀감으로 삼는 세상에 이것이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라고 할 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상식이 상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태라 할지라도 지도자 반열에 서는 사람이라면, 또는 최고지도자를 모시고 세상에서 뜻을 펼치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는 다른 과정을 거쳤어야지 민초들을 향한 그들의 지도력(?)이 약발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갖는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쓰디 쓴 담금질의 시간을 보냈다면, 그런 인물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떳떳하여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관이 행여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에게는 이로우나 세상에 해로운 선택을 할 때에도 목숨 걸고 옳은 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것이 상관을 잘 모시는 것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힘없는 일반 백성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하나가 죽어 수 백, 수 천만 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연한 권리를 내려 놓고,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스스로 고난을 택했고, 고독의 시간을 감내하며 미래를 준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배움을 누리지 못한 이들의 회한을 어루만질 수 있고, 기회를 잡을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누리지 못한 이들의 상실감에 함께 슬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정책을 세우고 실행할 때, 편협하고 허점투성이로 보이는 국민들의 생각일지라도 먼저 그들 편에 서서 헤아려 보고자 하고, 들어보려 하고, 설명하려 하고, 기다릴 것이다. 때론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 할지라도,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인내력을 발휘하고, 잘못을 잘못이라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깨닫게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우유부단하지 않은 솔선수범의 결단력을 보이고자 부단히 애쓸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목표한 것을 이루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다음에 올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모두 다 자신이 이루려는 조급함에 휘둘려온 우리의 역사를 자신의 대에서 끝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맺고 끊는 것에 명확하고, 설 자리와 피할 자리를 구분하는 상식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지도자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함엔 먼저 부끄러워해 밤 지새도록 구리거울 닦는 사람, 그 사람일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사는 사람이다.

새 정부에서 장차관을 비롯하여 대통령이 지명하는 3급 이상 임명직 고위공무원이 1700여명이라고 한다. 이중 우린 몇 명의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볼 수 있을까? 1600여명은 아니더라도, 나머지 100여명은 될까? 아님 이는 너무 많으니, 절반가량인 50여명일까? 이런 셈법 말고, 그나마 신문지상에서 언급되는 이들이 장차관급 120여명이니, 그들 중 10여명은 될까? 그런데 아직 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기는 고사하고, 왼손이나 오른손의 손가락 다섯 개로는 꼽아볼 수 있을까?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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